我家吾場 철학과 귀소헌

我家吾場 철학과 귀소헌

귀소헌(歸素軒)은 집주인 윤상기 교수 부부가 12년 전에 영암 월출산 자락 개신리 새박골에 대흥사의 일지암을 본떠 동일한 규모로 지은 집이다. 
일지암은 초의 선사가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 등과 시서화를 논하면서 풍류를 즐겼던 조선 후기 인문학 담론의 보고였다. 
그 일지암의 정신을 우리시대에 다시 한번 발현 시키고자 이곳에 터를 잡고 귀소헌 원림을 조성하기 시작 하였으니, 이 부부가 지향하는 인문학 담론의 정원은 
빼어난 수목이나 희귀한 화초로 잘 정돈된 정원이 아니라 ‘타샤의 정원’과 같이 자연과 하나된 평화로운 정원으로 고요한 화엄의 세계이다.
귀소헌 이란 당호는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사에서 영향을 받아 지었다고 한다. 귀거래(歸去來)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일컫는 말로, 
윤교수의 선조인 고산 윤선도도 다음과 같은 은자적 삶을 희구하는 한시를 남기고 있다.

人間軒冕斷無希(인간헌면단무희) 인간 세상 높은 벼슬 결코 바라지 않았고
惟願江湖得早歸(유원강호득조귀) 오직 강호에 일찍 돌아갈 수 있길 원했네
已向孤山營小屋(이향고산영소옥) 이미 외로운 산에 작은 집을 지어 놓으니
何年實着芰荷衣(하년실착기하의) 어느 해에 실로 연잎 옷을 입을수 있으리

次韻謙甫叔丈詠懷二首(차운겸보숙장영회이수)중 두 번째 작품이다. 고산의 나이 30세 때의 나이에 지은 것으로써
젊은 나이인데도 조정 내 간신배들의 하는 짓을 보고 귀거래를 표명하는 시를 지은 것이다.
윤교수가 일지암을 본받아 지은 공간에 귀소헌 이라는 작명을 한데에는 이와 같은 선조들의 풍류정신과 은일정신이 함께 담겨 있는데, 
자연친화적이며 진세(塵世)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마음에서 지은 당호라고 헤아려 볼 수 있다.
귀소헌은 마을 입구에서 멀리 장군봉과 천황봉이 펼쳐지는 월출산의 장엄한 풍광을 바라보며 진입한다. 가까이 접근하며 와편으로 거칠게 막쌓기 한 담같은 벽이 나오고, 
그 사이로 방향을 틀면서, 진입부에선 보이지 않던 인문학 정원의 내밀한 마당에 들어서게 된다. 중심에 귀소헌과 매화 한그루가 서 있는 어머니의 품안 같은 화엄 세계로의 귀소다. 
화엄은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다. 집에서 키우는 진돗개 ‘호야’를 위한 집도 특별히 공간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호야’도 한 생명이요. 한 식구이니,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의 세계! 더블어함께 살아가며 ‘쉬엄쉬엄’ 화엄(華嚴)을 이뤄가는, 이것이 이 집의 ‘삶’이다.
새로 신축하는 귀소헌 별채는 이 터에 품었던 건축주의 뜻을 소중히 여겨, 그 정신과 그동안의 시간이 담겨 있는 기존 귀소헌을 훼손하지 않고, 
그 뜻을 강조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귀소헌 원림의 조성 행위 일체를 초의 선사가 지향했던 다선일미(茶禪一味)의 ‘다(茶)’에 비유 한다면, 
귀소헌에 담긴 의미는 ‘선(禪)’에 해당되는 정신의 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신축 건물로 인해 존재감이 퇴색되거나 
초라해 지지않고 빛을 더욱 발할 수 있도록 영역의 중심에 귀소헌이 배치되도록 했으며, 작고 검박한 공간이 귀소헌의 정신과 텅 빈 충만을 대변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우주만물의 귀소(歸素)를 깨우치는, 이것이 이 집의 ‘앎’이다.
월출산은 수많은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신령한 산으로 하나의 거대한 수석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한 폭의 산수화 같기도 하다. 막 떠오르는 달을 암봉 사이로 바라보는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워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는 영암 아리랑의 노랫말이 되었다. 고산 윤선도도 월출산에 올라 시조 한수 남겼으니,
월출산이 높더니마는 미운 것이 안개로다. 
천왕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워 버렸구나. 
두어라 해가 퍼진 뒤면 안개 아니 걷히랴.
고 하였다. 기기묘묘한 월출산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을 조망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건물의 높낮이를 조율하고, 막히면 터주고 터지면 막아주는 
다양한 공간 리듬으로 춤추게 하였다. 월출산에 달이 뜨면 숲속의 신비와 뭇생명들이 집과 어우러져 노닐며 풍류(風流)를 노래하는, 이것이 이 집의 ‘놂’이다.
중심을 “ㄴ”자로 둘러싸고 있는 신축 별채 건물은 전통 공간구성 개념을 차용해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채를 나누고 집의 다양한 쓰임에 가변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토굴, 장독대 등의 부속시설 동선과도 무리 없이 연계될 수 있도록 하였다. 집의 구조는 대청마루와 온돌을 반영해 하절기와 동절기 쓰임에도 유용하도록 했으며, 현대적 공간 개념과 
전통적 공간 개념이 어우러진 시공간을 형성해 기존 시설들과 조화를 이루는 쓰임을 갖도록 하였다. 신구가 공존하는 온고지신의 덕으로 상생(相生)을 지어가는, 이것이 이 집의 ‘풂’이다.
다목적실의 옥상에 서면 월출산이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2층 객실앞 옥상에 족욕을 하며 월출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옥외 욕조를 설치해 달이 뜨거나, 비가 올때나, 
눈이 내릴때도 온전히 하늘의 기운과 하나되는 풍취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살아가면서 집의 형(形)과 상(象)이 자연과, 집의 수(數)와 시(詩)가 생활과, 집의 내(內)와 외(外)가 
이웃과 합일되는 그윽한 공간으로 깊어지고 지속적으로 자연 풍광과 함께 아름다움을 지어갈수 있기를 바란다. 나와 집이 ‘하나’되는 아가일여(我家一如)적 삶으로 천지와 합일된 
원융(圓融)을 이뤄가는, 이것이 이 집의 ‘빎’이다.

2017년 10월 글/ 곽재환(설계/ 건축그룹 칸 대표)